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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2030 세대에게 전하는 메세지 (전쟁, 평화, 의미)

by senju 2025. 5. 2.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정말 ‘전쟁’이라는 걸 아는 세대일까? 우리는 늘 ‘전쟁을 잊지 말자’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정작 총성이 울린 적 없는 땅에서, 하루 세 끼를 챙기며 걱정은 물가, 출근, 연애, 인간관계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쟁영화’라는 장르조차도 가끔은 나와 너무 멀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영화 <고지전>은 그런 거리감을 단숨에 허물어버립니다. 화려한 전투 장면 때문도, 실화 기반의 이야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감정 때문이죠. 죽음을 바라보는 눈빛, 서로를 의심하다가도 끝내는 이해하려는 마음. 그게 화면 속에서 너무도

진짜처럼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처음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 2030 세대가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

<고지전>의 배경은 1953년 한국전쟁의 막바지입니다. 종전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더 치열해집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 그 시점에 점령 중인 고지가 각자의 영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단 하루라도 더 많은 땅을 점령해야 전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죽어가던 전선은 되레 되살아나고, 병사들은 말 그대로 갈려나갑니다. ‘싸우지 않아도 되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때 전방 부대에 배치된 한 장교가 있습니다. 강은표 중위(신하균 분). 그는 내부의 첩자를 색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최전선에 투입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었습니다. 명령을 따르느라 감정을 잃어버린 병사들, 동료의 죽음에 무감해진 얼굴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사람 냄새가 나는 적군의 모습.

그중에서도 적 장교 ‘정수’(고수 분)는 영화의 방향을 바꿔놓는 인물입니다. 총을 들고 마주한 적인데, 왜인지 모르게 인간적인 슬픔이 느껴지고, 심지어 서로를 구해주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이 전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우리에게 그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평화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는 말이 들려오는 와중에 병사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갑니다.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려는 욕망, 그 뒤에 숨은 지도자들의 전략,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서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들.

가장 평화로워야 할 시점에 가장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건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현실이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평화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어릴 땐 수학여행도 북한 때문에 취소된 적 없고, 밤에 뉴스 보며 걱정한 적도 거의 없죠.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이 평화를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요?

<고지전>은 말없이 그걸 보여줍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조용한 일상, 그 모든 것들은 사실 누군가의 죽음, 혹은 인간성을 포기하면서 지켜낸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이 영화를 보는 순간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소파,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내 손,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일 때문에 피곤하다고 투덜대던 내 모습이 조금은 사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들었다는 게 바로 이 영화의 진짜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적군 장교와 아군 병사가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서로 총을 들고 있었지만, 눈빛 하나로 ‘당신도 나처럼 고통받고 있구나’를 알아보는 순간이 있었죠.

그건 그냥 연출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고, 전쟁이 끝나길 바랐습니다.

‘사람’은 어느 진영에 있든, 결국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적을 죽이는 것이 의무지만, 적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이다”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집니다.

신하균과 고수, 두 배우는 그 미묘한 감정을 정말 훌륭하게 표현해냅니다. 말보다는 눈빛으로, 총보다 더 날카로운 양심의 흔들림으로. 그걸 본 관객은, 전쟁 속에서도 우리가 인간일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

의미

2030 세대는 전쟁을 모릅니다. 하지만 감정을 압니다. 슬픔, 분노, 사랑, 이해, 그리고 공감.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사람의 감정에 반응할 줄 아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고지전>은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입니다. 단지 “전쟁은 나쁘다”는 교훈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나”를 묻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북한, DMZ, 군사훈련이라는 단어들이 그저 정보가 아닌,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아니라, ‘전쟁을 이해하는 세대’로 성장하게 되는 겁니다.

<고지전>은 그런 힘을 가진 영화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우리 세대 모두에게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