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화관에서 기대하는 경험은 다양합니다. 어떤 날은 진지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또 어떤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기도 하죠. 2024년 개봉한 영화 핸섬가이즈는 후자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고, 가볍게 웃으며 즐기기에 딱 좋은 이 영화는 공포와 코미디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장르를 절묘하게 섞어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시골로 이사 온 두 남자의 소소한 일상 같지만,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관객을 놀라게 하고 또 웃게 만듭니다.
공포가 주는 긴장감과 코미디가 주는 해방감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장르 영화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줄거리
핸섬가이즈는 두 남자 재필(이성민 분)과 상구(이희준 분)가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오며 시작됩니다.
대도시에서의 바쁜 삶을 정리하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도착한 그 집은 언뜻 보기에 평화롭고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사 오자마자 이상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하죠.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 말을 아끼고,
집 주변에는 설명되지 않는 기묘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전형적인 ‘귀신 나오는 집’ 설정을 따르는 듯하지만, 곧장 그 공식을 뒤틀어 버립니다.
초반에는 밝고 경쾌한 톤으로 두 주인공의 일상과 이사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지며 관객을 웃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밤마다 들리는 소리, 혼자 켜지는 불, 마당에서 발견되는 수상한 물건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얽힌 과거의 사건이 하나둘 밝혀지며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진짜 공포영화처럼 관객을 떨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긴장감을 주는 와중에도 대사와 상황 설정을 통해 웃음을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귀신이 등장하는 순간에도 이성민과 이희준은 그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하면서도
계속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며 좌충우돌하게 되죠. 마치 현실에서 공포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진짜 어떻게
반응할지를 보는 듯해, 공감이 가면서도 웃음이 터집니다.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유쾌합니다. 비밀을 감춘 시골집,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대책 없이 덤비는 두 남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엉뚱한 상호작용. 전개는 빠르지 않지만, 특유의 ‘허술한 매력’이 영화 전체를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반전보다는 예측 가능한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 인간적이고 웃기기 때문에 끝까지 지루하지 않습니다.
연출
사실 공포와 코미디라는 두 장르는 쉽게 섞이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공포는 긴장과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고,
코미디는 그 긴장을 깨뜨려 웃음을 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핸섬가이즈는 이 모순되는 두 요소를 상당히 유연하게 조합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배우들의 힘입니다. 이성민과 이희준이라는 배우는 각자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연기자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완벽한 조합을 보여줍니다.
이성민은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어이없는 상황을 대처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의 능청스럽고 건조한 연기는 관객에게 “이게 진짜야?” 하는 묘한 이질감을 주면서도 웃음을 유발하죠.
반면 이희준은 상황에 과하게 반응하거나 겁에 질려 도망치는 전형적인 ‘찔찔이 캐릭터’를 소화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이 둘의 상반된 캐릭터는 영화 전반에 걸쳐 티키타카를 이루며, 공포보다는 ‘사람 구경’이 더 재밌다는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감독 조달환은 연기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연출에 도전했는데, 그만큼 배우의 움직임과
리듬을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장면마다 긴장감을 줄 수 있는 구성을 배치하면서도, 그 타이밍을 너무 늦추지 않고
바로 유머로 반전시키는 센스가 인상적입니다.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며, 이야기를 경쾌하게 밀고 나가죠.
또한 사운드와 편집의 활용도 눈에 띕니다. 갑작스러운 효과음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그다음 장면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넘겨버리는 ‘속이기 전략’은 전통적인 공포 영화의 클리셰를
교묘히 비트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얽히면서,
핸섬가이즈는 비록 장르 영화지만 충분히 대중적인 웃음과 재미를 주는 데 성공합니다.
웃음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어쩌면 그 어떤 영화보다 현실적인 ‘겁쟁이 인간상’을 잘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대개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딘가 담담하거나 무모하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핸섬가이즈 속 두 남자는 철저하게 평범합니다.
귀신이 나오면 기겁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면 서로를 탓하며 우왕좌왕합니다.
이 허술함이야말로 우리가 공포 상황에서 보일 반응의 진짜 모습이고,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죠.
또한 핸섬가이즈는 장르 혼합의 좋은 사례입니다. 한국 영화계는 스릴러나 멜로, 가족 드라마에 강점을 보여왔지만,
공포와 코미디의 조합은 다소 낯선 영역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틈새를 잘 파고들었고,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물론 깊이 있는 메시지나 사회적 은유는 적지만, 그만큼 오락성과 친근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관객과 소통하려는 태도가 명확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모든 영화가 대단한 메시지를 담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론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는 영화 한 편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다음 날을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어줄 수 있죠. 핸섬가이즈는 그런 영화입니다.
깊진 않지만, 시원하고 유쾌한 한여름의 에피소드처럼.
핸섬가이즈는 공포를 싫어하는 사람도, 웃긴 영화만 좋아하는 사람도,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한여름 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다면, 지금 이 영화가 그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