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영화 <자백>을 보겠다고 했을 때는 단순히 반전이 있는 스릴러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가 단순히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찾아가는 여정이면서, 동시에 내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믿고 또 의심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감정이 결말에서 마주한 진실보다 더 오래 남는다.
줄거리
주인공 유민호(소지섭)는 잘 나가는 IT 기업의 대표다. 성공한 젊은 CEO 답게 세련되고 냉정하며
대외적으로는 모범적인 이미지까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어느 날,밀실에서 발생한
여자 동료의 죽음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는 바로 ‘그’ 자신이다.
죽은 여성이 발견된 곳은 외부에서 침입이 불가능한 산장의 방. 그는 죽음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이지만,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찰도, 여론도 그를 믿지 않는다.
그는 유명하지만 은퇴한 변호사 양신애(김윤진)를 고용한다. 신애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사건 현장으로 유민호를 데려가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며 캐묻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대화로 전개되며 점점 진실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화를 이어갈수록 유민호의 진술은 자꾸만 엇갈리고, 신애는 그 틈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순간, 모든 이야기를 뒤집는 반전 한 방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트릭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감정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구조였다.
진실
영화 <자백>은 우리가 익숙한 수사 스릴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반전’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감정’의 균열을 따라가는 영화라는 점이다.
소지섭이 연기한 유민호는 극 초반부터 침착하고 이성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논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심지어 사건을 냉정하게 설명하면서 관객의 신뢰를 얻는다.
“저 사람은 정말 억울한 게 맞겠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며 보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진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혹시 이 사람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리고 그걸 유도하는 인물이 바로 양신애다.
김윤진은 정말 이 인물을 ‘기계처럼’ 연기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말과 눈빛, 호흡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처럼 상대방을 찌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총도, 살인도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해체’하고 결국 진짜를 드러내는 냉정한 질문들이다.
중반 이후부터는 관객도 혼란스러워진다. 누가 진짜고, 누가 거짓인지, 그들이 왜 이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정리가 되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람이 ‘말’보다 ‘표정’으로 더 잘 속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점이었다.
나는 영화 내내 유민호의 눈빛을 보고 그가 억울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표정은
철저하게 계산된 감정의 연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느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너무 쉽게 속는다. “나는 거짓을 판단할 수 있어”라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먼저 고르고 그걸 믿을 만한 이유를 뒤늦게 붙이는 것뿐이었다.
영화 <자백>은 그걸 아주 교묘하게 설계한다. 누군가의 말보다 그 말에 실린 감정의 ‘톤’에 더 끌리게
만들고, 그 감정이 나를 속이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돌아보게 됐다.
나는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믿고, 또 얼마나 확신을 갖고 그 믿음을 방어했을까.
그리고 그게 진짜였는지 아닌지는 결국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는 거였다.
결론
<자백>은 뛰어난 반전 스릴러지만, 더 강한 건 그 반전을 통해 우리의 믿음, 의심,
그리고 감정의 판단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소지섭은 침착한 감정연기로 억울한 남자의 얼굴부터 모든 걸 들킨 순간의 공포까지 단계별로
완벽하게 표현해냈고, 김윤진은 그 감정을 무너뜨리는 데 1도 흔들림 없는 무서운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단순한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었는가’를 물으며 끝난다.
<자백>은 그래서 범죄 영화라기보다는 감정 심리극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감정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