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회사원>이라는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땐, 퇴근길의 피로와 직장 스트레스를
녹여줄 소소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회사원’이라는 직업의 얼굴을 그려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남자지만, 그의 직업은 ‘살인 청부업자’다.
직장을 다니듯, 퇴근을 하고 명함을 주고받고 회식까지 하지만, 그들의 일은 사람을 죽이는 것.
<회사원>은 그런 이중적 세계 속에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감성 누아르다.
줄거리
지형도(소지섭)는 외부에서 보기엔 잘 나가는 보험회사의 대리쯤 되어 보이는 남자다.
정장 차림에 매너도 좋고, 출퇴근도 정시다. 하지만 그가 속한 ‘회사’는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비밀조직이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의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의 일은
타깃을 제거하는 것. 말 그대로 킬러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우연히 한 여성, 유미(이나영 분)를 만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조직원 중 한 명의 가족이었고,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지형도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이
비정상적일 수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살인을 반복하며 살아온 그의 삶, 그 안에서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그를 덮친다.
하지만 냉혹한 조직은 쉽게 사람을 놔주지 않는다. 지형도의 변화는 곧 위협이 되고,
그는 결국 조직과 대립하게 된다. 그가 킬러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거부하는 순간,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 가장 큰 전환점을 맞는다.
회사원
<회사원>은 액션이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니다. 총성이 울리고, 죽음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핵심은 ‘쏘는 손’이 아니라 ‘떨리는 눈’이다.
지형도는 조직 내에서 능력도 인정받고 신뢰도 높은 인물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외롭고
공허한 사람이다. 그는 말없이 사람을 죽이고, 그저 숫자로 처리된 업무보고처럼 감정을 지운다.
하지만 유미와의 만남은 그에게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새긴다.
그녀와 함께 라면 다른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이 생긴 순간, 조직은 그를 제거하려 한다.
왜냐하면 킬러에게 감정은 곧 실패이고, 의문은 곧 반역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지형도가 처음으로 사람을 살리려 하는 장면에서 그의 진짜 인간성을 드러낸다.
그가 유미를 바라보는 눈빛,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선택은 그의 직업보다
그의 ‘사람됨’을 보여준다.
<회사원>은 조직의 킬러라는 설정을 통해 사실은 ‘직업과 인간성’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많은 직장인들이 ‘일’과 ‘자아’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일이 내 삶을 대표하지 않는데,
일 때문에 내 삶이 소모될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형도는 단지 살인을 했기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다. 그는 감정 없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살아온 시간 자체가 자신을 공허하게 만들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마지막 욕망으로 인해 모든 걸 걸게 된다.
우리가 흔히 ‘월급을 받기 위해 감정을 죽인다’는 말을 하듯, <회사원>은 그 말을 실제화한 영화다.
다만 주인공은 정말로 사람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그도 인간이었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고, 죽이는 대신 살리고 싶어졌다.
영화를 보며 내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떤 회사를 다니고 있는가?
그 안에서 나는 사람인가, 시스템의 톱니인가?
이 영화는 결말보다 그런 질문들이 오래 남게 만드는 작품이다.
결론
2025년 지금, 다시 <회사원>을 보면 단순한 킬러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감정적이고,
로맨스라고 하기엔 너무 슬프다. 이 영화는 장르를 넘어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묻는 드라마다.
소지섭의 절제된 연기, 이나영의 섬세한 감정 표현, 그리고 무채색 도심 속 감정의 진폭. 그 모든 게
어우러져서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 누아르가 아닌, ‘감정 누아르’로 재조명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직장이라는 말이, 때론 인생을 말하는 것이 되어버린 지금. <회사원>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지 같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