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미키17을 보기 전까지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이 이젠 좀 식상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미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 그런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더군요. 봉준호 감독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까지 새롭고, 묵직하고, 뭔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2024년 최고의 SF 화제작이라 불릴 만합니다. 미키17은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따라가는 작품이에요.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어요. ‘나는 과연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더라고요. 오늘은 이 영화가 왜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찬찬히 풀어보려고 합니다.
줄거리
이야기는 꽤 간단하게 시작됩니다. 인류는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려고 하고, 거기서 아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인물이 필요하죠. 그래서 ‘미키’라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뭐냐면, 말 그대로 ‘소모용 인간’이에요. 죽더라도 괜찮은 존재. 왜냐하면 기억과 성격이 저장되어 있어서, 죽으면 다시 복제되어 부활하니까요.
이게 참 섬뜩하더라고요. 죽는 게 아무렇지 않은 존재라니.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생깁니다. 어느 날, 죽었어야 할 미키가 우연히 살아남아요. 그리고 새로운 복제 미키도 만들어져 버리죠. 그렇게 한 공간에 두 명의 미키가 존재하게 됩니다.
이 설정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만약 나와 똑같은 모습, 똑같은 기억을 가진 존재가 눈앞에 있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요? 불쾌할까요? 두려울까요? 아니면, 나도 모르게 경쟁심이 들까요? 영화는 이 묘한 상황을 아주 섬세하게 파고듭니다. 대놓고 싸우거나 극적인 전개가 펼쳐지는 건 아니지만, 두 인물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끝까지 끌고 갑니다. 말수가 적고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도, 관객의 머릿속은 계속해서 생각으로 꽉 찹니다.
봉준호 감독
이번에도 해냈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대는 늘 높지만, 이번에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SF라는 장르를 빌려 오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여전히 ‘인간’ 이야기입니다. <설국열차>나 <옥자>, <기생충>에서도 그랬듯이, 그는 이번에도 사회 시스템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합니다.
<미키17>에서는 복제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 기억, 감정, 심지어 자아까지도 시스템이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요. 그리고 그 질문은 관객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듭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봉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 요소입니다. 죽는 데 익숙해진 미키의 무덤덤한 반응이나, 복제라는 현실이 주는 불편한 유머가 여기저기 숨어 있어요.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그 분위기, 아마 봉 감독 팬이라면 익숙할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 전체의 톤이 절제되어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요즘 SF 영화들처럼 화려한 CG나 빠른 액션으로 시선을 끌지 않아요. 오히려 침착하게, 인물들의 감정에 천천히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게 정말 묘하게 몰입감을 줍니다. 조용한데 지루하지 않고, 느린데 눈을 뗄 수 없어요.
결론
솔직히 영화가 끝났을 때, 마음이 좀 무거웠습니다. 뭔가 깊은 데서 울리는 울림이랄까요. 미키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에게 나는 ‘대체 가능한 사람’은 아닐까? 요즘처럼 모두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없어져도 금세 대체되는’ 존재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게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만들어줍니다. 인물 간의 감정선, 대화의 리듬, 눈빛 하나까지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별다른 설명 없이도 관객이 그 상황에 푹 빠질 수 있게 도와줘요.
배우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로버트 패틴슨, 정말 좋았습니다. 과거에 뱀파이어로만 기억했던 그가 이제는 정말 깊이 있는 배우로 완전히 자리잡은 느낌이에요. 감정의 폭이 굉장히 넓고, 복제된 인간의 내면을 참 리얼하게 표현해냅니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끝내 자신의 자아를 지키려는 그 고요한 투쟁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미키17>은 복제에 대한 영화지만, 진짜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아주 개인적인 것,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죠.
세상은 점점 자동화되고, 기술은 점점 인간을 닮아갑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미키17>은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질문을 ‘진심으로’ 던져주는 영화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하는 사람보다는, 이야기를 곱씹고 여운을 즐기는 사람에게 더 맞을 거예요. 스토리의 전개는 빠르지 않지만, 그만큼 깊고 묵직합니다.
만약 요즘 나 자신에 대해, 혹은 삶의 의미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영화가 꽤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어쩌면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나는 진짜, 나인가?”